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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나그네의 시선에서

초가집 여러 채가 모여있는 한 마을이 있었다. 그중 한 집은 불씨가 연기와 함께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굴뚝이 곧아 있었고, 그 옆에는 땔감들이 많이 쌓여 있었다. 불씨 하나로 온 마을에 불난리가 나기에 십상이었다. 이에 길 가던 나그네가 그 집주인에게 말했다. “굴뚝을 굽히고 땔감을 옮기시오.” 하지만 주인은 나그네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며칠 뒤 일이 터졌다. 굴뚝을 통해 나온 불씨가 바람을 타고 땔감에 옮겨붙어 큰불이 났다. 이웃집 한 사람이 말했다. “나그네 말을 들었다면 불이 날 일이 없었을 것을.”

『십팔사략』에 등장하는 일화로, 곡돌사신(曲突徙薪)이라는 사자성어로도 표현된다. 대게 겨울철 화재 예방에 인용되는 말이지만 전란, 천재지변 등과 같은 난리를 미리 방지하라는 교훈에도 활용된다.

지난 두 달간, 한국은 말 그대로 ‘난리’법석이었다. 지난 8월 기록적 폭우에 이어 9월 태풍까지 강타했다. 전국이 물에 잠기고, 도로, 지하철 등 교통이 마비됐다. 상가 내부까지 빗물은 쏟아졌고, 차가 침수되는 등 막대한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반지하에 살던 사람들은 고달픈 삶의 유일한 안식처를 잃었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인명사고도 속출했다. 특히 안내방송을 듣고 지하 주차장에 차를 빼러 갔다가 변을 당한 경북 모 지역의 사고는 더 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곧바로 정부는 대책을 내놓았다. 반지하 등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이 정상 거처로 이주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달에는 풍수 재해 보험 혜택도 강화하고, 지하 주차장 차수벽 설치 등 제도적 차원에서의 대책도 약속했다. 이미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한 현 상황에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꼴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다시 그 소를 키우기 위해서는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하니, 현 정부의 대응이 틀렸다고만은 볼 수 없다.

다만 조금 아쉬움이 있다면 정책에 디테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반지하 이주, 보험 혜택, 차수벽 설치 모두 시민의 후생에 도움이 되고, 향후 또 다른 재난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대책은 맞다. 하지만 왜 반지하라는 기이한 거주 형태가 생길 수밖에 없었는지, 왜 지하 주차장에 물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고민이 빠져있다. 보험 정책도 사고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기보다 피해 발생 이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애초에 일말의 피해조차 나오지 않도록, 보다 근본적으로 화(禍)를 예방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곡돌사신 일화 중 나그네의 예방책이 불을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었듯, 필자도 수재(水災)를 예방하기 위해선 비가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둥, 기후변화를 막아야 한다는 둥 현실성 없는 대안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나그네의 시선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가 화재에 취약한 마을 구조를 지적했듯, 재난에 취약한 사회 구조를 살펴보려는 자세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아 근데 문득 드는 의문. ‘인하대엔 나그네가 없는가?’

이재원 편집국장  ljw3482@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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