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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생기와 아픔이 공존하는 곳

인천광역시 부평구, 생기와 아픔이 공존하는 공간이 있다. 학교에서 버스로 40분. 부영공원과 부평공원 사이에 이질적인 공간이 눈에 띈다. 아파트와 상가들이 즐비한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높은 담장과 철조망이 보인다. 철조망엔 ‘Restricted Area No Trespassing(제한구역 접근엄금)’이란 단호한 문구가 적혀있다. 이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끼익’ 소리가 날 것만 같은 녹슨 철문 ‘GATE 1’을 만난다.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초록색으로 가득한 싱그러운 잔디밭이 펼쳐진다. 페인트가 벗겨진 오래된 건물과 그 사이사이 눈에 띄는 알록달록한 건물과 영어 표지판까지. 이국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이곳은 바로 ‘캠프마켓’이다.

 

캠프마켓의 역사

캠프마켓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담겨있다. 1939년,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만주와 중국 일대로 보낼 병기를 신속히 생산하기 위해 지금의 부평 일대에 ‘인천육군조병창’을 조성했다. 조병창은 무기나 탄약 등 전투에 쓰이는 기구들을 제작해 저장, 보급하는 시설이다. 일본은 그곳에서 조선인으로부터 수탈한 온갖 철제를 녹여 무기로 만들었다. 이후 조병창은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함과 동시에 해산됐다.

조병창 해산 뒤, 우리 품으로 돌아오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부평 부지에는 또 다른 나라가 들어섰다. 바로 미국이다. 해당 부지는 주한 미군의 물자와 식량 보급을 위한 ‘애스컴시티(ASCOMCITY)’로 활용됐고, 내부에는 군사시설과 편의시설이 자리 잡았다. 그러던 중 주한미군 담당 ‘121 후송병원’이 용산 미군기지로 옮겨간 것을 시작으로 다른 미군 시설들의 대대적인 이전이 이뤄졌다. 애스컴시티 내의 시설도 타지역으로 이동했고, 1973년 자연스레 해체 수순을 밟게 되며 현재의 캠프마켓이 된 것이다.

높은 담장과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캠프마켓

캠프마켓 반환을 위한 땀방울

애스컴 시티 해체 후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시민들은 캠프마켓 반환을 위한 목소리를 모으기 시작했다. “우리땅 부평미군부대 되찾아 시민공원 조성하자” 부터 “반환 부지를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땅으로”, “시민의 힘으로 되찾은 부평미군기지, 시민의 품으로”등. 1990년대부터 시작된 캠프마켓 반환을 위한 시민운동은 1996년 본격화됐고, 이어 ‘우리땅 부평미군기지 되찾기 및 시민공원 조성을 위한 인천시민회의’, ‘부평미군부대 공원화추진 시민협의회’ 등이 결성됐다. 이 외에도 시민들은 인간띠잇기 행사, 걷기대회, 674일간의 천막 농성 등을 이어갔다.

마침내 2022년, 시민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서 캠프마켓 반환이 결정된 것이다. 반환이 결정되고 17년이 지난 2019년 12월, A, B, C, D 4개의 캠프마켓 구역 중 A, B, C구역이 반환됐다. 우리 손을 떠난 지 80년 만의 일이었다.

 

2022년, 캠프마켓은 어떤 모습일까?

그렇다면, 지금의 캠프마켓은 어떤 모습일까? 현재 시민들에게 개방된 구역은 B구역 일부뿐이다. B구역 담장을 해체하고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타국의 흔적은 남아있다.

캠프마켓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잔디밭은 미군들이 사용했던 야구장이다. 영문으로 된 야구 경기 점수판부터 현재 출입은 불가하지만, 응원 소리가 울려 퍼졌을 관중석까지. 그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현재 야구장 부지는 시민들의 쉼터로 변신했다. 배드민턴, 캐치볼 등 삼삼오오 모여 운동하는 청년들, 산책하다 의자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들, 그리고 포토존에서 사진 찍으며 추억을 남기는 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초록빛 잔디와 어우러진 그들의 모습은 캠프마켓에 싱그러움을 더해준다.

야구장 좌측으로 향하면 보이는 철문 너머로 A구역 조병창 1공장의 두 굴뚝이 우뚝 솟아있다. 공장 건물은 철문에 가로막혀 볼 수 없다. 과거 그곳에선 조선인들로부터 수탈한 놋그릇, 세숫대야, 징 등을 녹여 전쟁에 사용할 무기가 만들어지곤 했다. 지금은 일반적인 공장 굴뚝처럼 보이지만, 우리 민족의 아픔이 느껴지는 듯했다. A, B, D구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C구역은 미군이 사용했던 오수정화조가 있다고 한다. 현재 D구역은 반환되지 않아 출입이 불가했기 때문에 먼발치서 보이는 빵 공장의 모습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가 가본 이날, 캠프마켓의 ‘오늘&내일’ 건물에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인 ‘슈링클스 베이킹’이 진행됐다. 캠프마켓의 로고와 원하는 그림을 슈링클스 종이에 그려 키링으로 만들어 보는 수업이었다. 처음엔 집중하기 어려워하던 아이들도 활동하다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강사와 소통하며 그림을 그리는 데 열중했다. 그렇게 완성된 결과물을 보며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쳐다봤다. 체험하는 한 시간 동안 어린이도, 그들의 부모님도 모두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이 밖에도 전통 연날리기, 요가, 골프 등 여러 프로그램이 시민들에게 제공된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인천 시민에게 캠프마켓이 개방되고 달라진 점을 묻자, “일단 담장을 허물어 시야가 트여서 보기 좋고, 시민들을 위한 공원이 생겨서 좋다”고 말했다. 정부와 시민들의 꾸준한 노력이 통한 것이다.

슈링클스 베이킹 체험을 하는 모습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

캠프마켓 반환 당시 토양 오염 수준은 심각했다. 고엽제 매립 등 외국 군대의 부지 남용이 오염 원인으로 추정된다. 반환된 캠프마켓 구역을 시민들에게 개방하기 위해선 반드시 오염된 토지를 정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A구역은 지난해 11월 고농도 다이옥신 오염 토양 정화를 완료했지만, 중금속과 유류 오염 정화는 끝나지 않아 아직 시민들에게 돌아오지 못했다.

D구역은 토양이 오염됐을 뿐만 아니라 아직 반환조차 받지 못했다. 여전히 ‘금단의 땅’인 것이다. 올해 10월에 D구역 반환을 계획하고 있지만, 환경기초조사 실시 등 절차가 아직 남아있어 우리의 품에 돌아오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타국 군대 주둔 기간 이뤄진 각종 중금속, 유류, 그리고 유해 물질로 인한 토양 오염을 우리 힘으로 정화하는 현실은 민족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려는 몸짓 같았다.

캠프마켓은 아직 개방되지 못한 A구역과 B구역 일부의 오염 정화 작업을 9월 중으로 끝내고 B구역에 있는 음악 창작소를 개방할 계획이다. 이어 D구역은 환경기초조사가 끝나면, ‘2022 캠프마켓 시민생각찾기’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80년간 바로 옆에 있었지만, 담장에 막히고 오염에 막혀 마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민들과 정부의 꾸준한 노력을 통해 우리 삶에 점차 가까워져 가고 있다. 높게만 보였던 담장을 허물고, 오염 물질로 가득했던 토양은 점차 시민의 품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 머지않아 우리를 손 벌려 환영할 이곳, 캠프마켓은 시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발걸음을 천천히 내딛고 있다. 

 

시민의 염원이 담긴 문구와 사진들

김민진 기자  12212895@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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