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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초심 없는 기자

자정이 되자 눈에 초점이 흐려졌다. 기사를 수정하라는 선임기자의 말은 귓가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은 움직여 댔지만, 머릿속엔 온통 딴 생각뿐이었다. ‘지금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그때 수습기자 지원을 하지만 않았어도...’ 그러나 소용없었다. 이미 나는 인하대학신문 편집국에 있었고 오늘 안에 이 글을 완성해야만 했다.

모든 일의 발단은 한 동기가 학년 단톡방에 보낸 카톡이었다. “인하대학신문에서 수습기자를 모집하니 관심 있으면 지원해봐” 평소 기자라는 직업에 꿈이 있었기에 관심이 갔다. ‘마땅히 할 만한 활동도 없는데 학교 돌아가는 상황 배운다는 느낌으로 해보자’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을 결심했다. 학보사를 진지하게 생각하진 않았기에 일필휘지로 지원서를 써 내린 후 신문사 메일로 보냈다.

며칠 뒤 편집국장으로부터 면접을 보러 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별다른 준비 없이 면접장에 갔고 이런저런 질문엔 평소 소신대로 답했다. 면접이 끝나갈 무렵 편집국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합격하면 낮엔 주로 수업을 듣고 저녁에 글을 써서 밤새우는 일도 있을 텐데 괜찮겠어요?” 큰 각오 없이 들어간 면접장이었지만 그 말을 들으니 괜히 오기가 생겼다. “몸 사리지 않고 열정을 불태우는 것도 젊은 날의 특권 아니겠습니까?” 그로부터 한 달 반쯤 지난 첫 마감 회의 날 밤, 나는 그 말을 뱉은 입을 저주했다.

발행 전 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는 모든 기자가 모여 마감 회의를 한다. 신문에 찍힐 기사가 최선의 형태가 되도록 글을 다듬는 작업이다. 수습기자는 보통 1,400자 분량의 글 하나 정도만 맡아 업무강도가 낮은 편이지만 글 하나를 몇 시간씩 붙잡고 있는 일조차 고역이었다. 나름대로 공들여서 써봤지만 글 고치기에 숙달된 선임기자들은 내 글의 허점을 속속들이 잡아냈다. 다섯 시간쯤 지나 자정이 되니 나는 전의를 상실했다.

더는 못하겠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도망쳐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기엔 지금까지 써놓은 글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 이 글까지만 완성하고 그만두자’하는 마음으로 자리를 지켰다. 두 시쯤 되니 퇴근해도 좋다는 국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아침이나 돼야 끝날 줄 알았던 작업이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놓였다. 직전까지만 해도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일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고 힘든 시간을 이겨냈다는 성취감만 남으니 퇴사하고 싶은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다.

무책임하리만치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니 나에게는 힘든 시간이 찾아올 때마다 되새길 초심이 없다. 하지만 끊임없이 다가오는 시련과 이를 극복하는 경험은 내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된다. 정기자로서 첫 마감을 맞이하며 다시 한번 다짐한다. 결코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고 더욱 단단해지리라고.

이기원 기자  12212918@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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