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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담론] 언론은 부끄러움을 아십니까?
이지호 기자

 

지난 7월 15일. 있어서는 안 될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누군가에겐 친한 동기였고, 누군가에겐 아끼는 후배였으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자식이었습니다. 고인은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아내를 잃은 남편은 ‘홀아비’, 남편을 잃은 아내는 ‘과부’, 부모를 잃은 자식은 ‘고아’라고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를 따로 지칭하는 단어는 없습니다. 자식을 잃고 살아가야만 하는 부모의 고통을 감히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고인과 유가족은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 언론에 의해 다시 한번 2차 피해를 입어야만 했습니다. 수많은 언론사가 앞다퉈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사용했고 몇 언론들은 고인의 명예를 지켜 달라는 본교의 요구를 무시한 채 자극적인 워딩을 사용했습니다. 심지어 제목 수정을 요청한 본교의 한 학우에게 “다른 언론사에 비교하면 양호한 편이다”라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학교 내 상황 역시 동일했습니다. 거의 모든 기사에 본교의 이름과 건물이 노출됐고 많은 기자가 지나가는 학생을 붙잡으며 고인의 신상을 물었습니다. 개중에는 신상 보호를 해주겠다며 다짜고짜 카메라부터 들이미는 기자, 추모 공간에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도 있었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 날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몇몇 언론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가 1인으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현장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던 21살의 어린 학생은 총학생회실에 걸려 온 언론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의 비난을 받게 됐습니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에 따르면 언론은 명확히 개인의 명예를 해치는 사실무근한 정보를 보도하지 않으며 보도 대상의 사생활을 보호해야 합니다. 또, 취재의 과정 및 보도의 내용에서 지역, 계층, 종교, 성 집단 간의 갈등을 유발하거나 차별을 조장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언론은 특종을 위해 고인과 유족의 명예를 해치고 갈등과 차별을 조장했습니다. 이것이 언론인들의 현주소입니다.

이제 언론인들에 묻고 싶습니다.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언론. 그것이 여러분이 바라던 언론인의 모습이 아니었는지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언론인들은 어디에 있나요. 언론중재법이 발의될 당시 언론재갈법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울부짖던 언론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언론이 가지는 표현의 자유가 언제부터 보도 윤리를 지키지 않고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었나요.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언론이 전달하는 정보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직접적인 폭력보다 크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다수의 언론에 책임감이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진실과 정의가 아닌, 조회수를 위한 자극적인 글을 배포하는. 그런 언론인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한때 기자의 꿈을 가졌던 사람이자 같은 언론인으로서 선배님들이 부끄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글을 끝으로 펜을 내려놓겠습니다.

이지호 기자  12192861@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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