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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논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파괴된 국제규칙과 집단지성의 힘
  • 반길주 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 안보연구센터장
  • 승인 2022.05.29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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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길주 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 안보연구센터장

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무력으로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하며 명분 없는 전쟁을 개시했다. 물론 러시아는 나토 동진 차단이라는 나름의 이유를 거론했지만 이런 이유만으로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는 없다. 국제정치에는 어느 일방이 단지 힘이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일방을 무력으로 점령하지 못하도록 ‘주권’이라는 개념이 있다. 국제정치에서 한 국가가 주권을 보장받도록 제도화한 것은 길고 고된 과정이자 피와 눈물의 결실이기도 했다. 이러한 결실은 점점 구체화·정교화되면서 ‘정의의 전쟁론(Just War Theory)’으로 이어졌다. 시대를 뛰어넘는 집단지성 축적의 산실이었다. 정의의 전쟁론은 전쟁에도 명분과 정당성이 있어야 하며 전투 중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과 원칙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규범이자 이론인데 일부는 국제법으로도 명분화되어 있다.

러시아는 무력으로 이러한 국제규칙을 파괴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파괴행위로 집단지성이 다시 일어서고 있다. 명분과 정당성이 없는 러시아의 무력침공에 우크라이나 시민은 결사항전으로 용기 있게 맞섰고 국제사회도 규칙 재건을 위해 반러시아전선에 뛰어들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장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거센 ‘결집’은 국제사회에 아직도 집단지성이 남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집단지성은 일그러진 사회를 바로 세우고 파괴된 국제질서도 재건하는 추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나아가 집단지성은 그 자체로의 상징적 의미를 넘어 세계 2위의 러시아군이 전장에서 교착상태에 빠지도록 정신적으로 추동해주고 이것이 군사적 효과로도 이어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쟁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는 국제정치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기도 한다. 평시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전쟁에 대비하지 않으면 국가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 것이다. 전쟁을 막기위한 억제력 강화 조치와 그럼에도 만약 전쟁이 발발하면 조기에 승리하는 방법에 대한 다부진 준비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주는 셈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의 근본적 배경으로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속성이 거론된다. 한반도도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점에서 구조적 긴장이 상시 내재되어 있고 신냉전 질서 속에서 이러한 긴장이 더 상승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조성되고 있는 국제정치의 변화를 냉철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 국제질서가 신냉전인지에 대한 이견이 있어왔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단지 신냉전 수준이 아니라 신냉전 2.0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신냉전 2.0은 대리전 지대가 인도-태평양지역을 넘어 유라시아로 확대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지정학적 충돌지대가 확장되는 것이다. 나아가 신냉전 1.0이 강대국 간 경쟁이라는 국가적 수준의 충돌이었다면 신냉전 2.0은 국가를 넘어 세력 간 대결로 심화된다는 특징이 있다. 즉 ‘민주진영 vs. 독재진영’의 구도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진영 내 기술협력 강화 등의 기조는 양분화되고 있는 국제정치의 종속변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도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은 지정학적 요충지에 위치하여 있기에 선택으로 인한 결과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이다. 민주진영과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역내 국가인 중국·러시아와 소원해지는 결과를 잉태할 수 있는 딜레마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선택이 어렵다고 방관한다면 국익을 해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역내 국가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재편되는 국제질서에서 국익을 챙기고 역할도 확대할 수 있도록 한국의 국제정치 진화를 기대해본다.

반길주 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 안보연구센터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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