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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눈물의 연평도, 평화와 미래의 발걸음

 

‘갈매기도 우는구나 눈물의 연평도…’ 가수 故 최숙자씨가 부른 ‘눈물의 연평도’ 가사다. 이 노래는 1958년 연평도를 휩쓴 태풍 ‘사라호’에 의해 희생된 어민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해방 이후 연평도가 겪은 아픔을 상징하기도 한다. 연평도는 이제 그 아픔을 딛고 평화와 미래의 노래를 준비하고 있다.

연평은 연(延)이어 뻗친 땅이라는 데서 유래됐다. 처음엔 황해도 해주군의 관할 섬이었지만 해방 이후 경기도 옹진군 송림면으로, 그리고 1995년에 현재의 이름 연평면으로 인천광역시에 편입됐다. 대연평도와 소연평도, 5개의 무인도서로 이뤄져 있다.

연평도는 서해 5도(백령도·연평도·대청도·소청도·우도) 중 북방한계선(NLL)과 가장 인접해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서해안 최전방이자 군사적 요충지로서 가치를 지닌 지역으로 여겨진다. 6.25 전쟁 이후에도 제1차, 2차 연평해전 등 북한과 많은 교전을 겪었던 곳이다. 무엇보다 휴전 이래 최초로 민간인 거주 구역이 포격을 받은 섬이다.

많은 이들이 연평도를 안보적 가치를 가진 섬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그곳엔 2,000여 명의 주민들의 삶이 있다.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2시간, 기자가 만난 3일간의 연평도는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자 자연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섬이었다.

 

여전한 연평도 포격의 아픔

당섬 선착장에서 다리 하나를 건너면 연평면 시내로 갈 수 있다. 우체국과 경찰서를 비롯해 연평면 종합운동장, 주민자치센터 등 꽤 많은 시설이 눈에 들어온다. 운동장 앞에서 주민 A씨(76)를 만났다. “그땐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지. 훈련을 하는 줄 알았는데, 밖에서 보니 갑자기 시내 쪽으로 포탄이 날아오더라고.” 그는 씁쓸한 말투로 과거를 회상하며 운동장 외벽에 박힌 흔적을 가리켰다. 포탄을 맞은 벽은 콘크리트가 무너지고 철제 구조물만 남았다.

운동장 옆 한켠에는 대피호(4호)가 보인다. 대피호는 연평도 포격 사건과 같은 유사 상황이 발생했을 때 섬 주민들이 체류하며 보호받도록 설치된 곳이다. 이곳에는 보온, 급수, 취사 시설이 마련돼 있다. 아쉽게도 내부를 취재하는 건 사전 승인이 필요해 불가능했다. 현재 학교와 민가 옆 등에 총 10개의 대피호가 운용되고 있다.

시내 안쪽, 민가가 보이는 곳으로 좀 더 이동했다. 주택 사이에 박물관 하나가 어색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이름은 ‘연평도 안보 교육장’. 포격 받은 민가 세 곳을 그대로 남겨둬 당시 참담했던 상황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연평도에 40여 년 거주하며 직접 포격 사건을 겪었던 연평면 문화관광해설사 김영순(60)씨를 만났다. 그는 “당시 포격을 받은 민가들은 대부분 40년이 넘은 집들이었다”며 “건물이 낡아 그 자체로 위험한데 포격으로 집안 자체에 대형 교통사고가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설명했다.

보존된 집의 지붕들은 옆집과 서로 맞붙어 있었다. 자칫하면 폭발에 의해 불씨가 옮겨붙을 뻔했지만, 다행히 포격 당시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 큰 화재를 막을 수 있었다. 또한, 주유소가 생기며 옹진군청이 연평도에 있는 LPG 가스 드럼통을 수거했기 때문에 드럼통이 폭발하는 사고가 없었다고 한다. 포격은 오후 2시 경이었다. 주민들의 업무가 한창이었고, 여객선이 들어오고 있던 시간이라 가족을 마중 나간 주민들도 많았다. 김 해설사는 “다행히도 집에 남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물관을 나와 섬의 서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故 서정우 하사의 전사지가 있었다. 해병대 전역을 앞둔 서정우 하사는 마지막 휴가를 받고 집으로 향하던 도중, 연평도에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 부대로 발길을 돌렸다가 이 위치에서 전사했다.

이튿날 그가 숨진 자리 부근 소나무에 깊이 박힌 해병대 모표(모자에 붙이는 마크)가 발견됐다. 그의 용기와 투혼을 기리고자 소나무와 모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입대한 지 석 달째였던 故 문광욱 일병도 서해를 지키다가 전사했다. 연평도 포격으로 인한 희생자는 군인 2명, 민간인 2명이다.

 

운동장 벽에 포탄을 맞은 흔적이 남아있다.
포격 받은 민가가 '연평도 안보 교육장'에 전시돼 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연평도의 자연

연평도는 포격 사건을 잊지 않고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하고자 ‘평화의 섬’을 모토로 삼았다. 관광객이 다시 찾게끔 노력 중이다. 45년째 꺼져있던 등대도 다시 켜졌다. 기자가 직접 나가 느낀 연평도의 산과 바다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한없이 아름다웠다. 2,000여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간직한 섬 연평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가래칠기 해변이다. 넓지 않은 해안. 왼쪽으로는 빠삐용절벽이, 오른쪽으로는 병풍바위가 보였다. 수많은 세월에 걸쳐 파도와 바람에 부딪히며 깎인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절벽과 바위였다. 사진에서 보이듯 절경이다. 시각적인 부분에 더해 청각적인 즐거움도 주던 바다였다. 굵고 다양한 빛깔의 자갈들에 시선을 뺏긴 사이, 바닷물이 자갈을 타고 들어와 빠져나가며 만든 소리는 너무나 맑다. 마음을 평화롭게 만드는 이 매력에 흠뻑 빠져 사진을 찍고 난 후에도 가래칠기해변을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섬의 위쪽으로 조금 더 걷다 보면 구리동해변을 만난다. 길이 1km, 폭 200m의 드넓은 모래사장. 한눈에 봐도 가래칠기 해변보다는 훨씬 넓었다. 여름철이 되면 해수욕을 즐기기에 좋은 해변이다. 하지만, 해 질 녘에 서해의 석양을 보기는 어렵다. 바다 건너 북한 땅과 인접해 있어, 해가 지면 해병대에서 출입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푸른 바다와 어울리지 않게 해변 앞쪽의 철조망과 통문, 그리고 경고문은 분단의 아픔을 보여준다. 미완에 그친 아름다움은 아쉬움이 남는다.

산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파른 길을 걷다 보면 여러 군부대를 지나친다. 그리고 가장 꼭대기엔 평화전망대가 있다. 평화의 연평도를 상징하는 전망대다. 북한 땅이 잘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좌측부터 갑도와 장재도, 석도가 있고, 저 멀리 해주 땅까지 한눈에 담긴다. 전망대 해설사 안칠성(65)씨는 “날씨가 좋은 날에는 여기서 바다 건너 개머리 지역과 대수압도, 소수압도까지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찾았던 날은 아쉽게도 절반 정도만 보였다. 그는 “이곳이 연평도의 평화와 미래를 상징하는 관광거점이 될 것”이라 말했다. 원래는 군부대로 활용됐지만, 2020년 전망대로 조성해 1층은 전시관, 2층은 전망대로 사용하고, 3층에만 군 시설이 남아있다. 훤하게 보이는 푸른 바다는 물론, 4km 앞에 북쪽 땅이 보이기 때문에 연평도 앞바다를 ‘전망’하기에 괜찮다.

마치 병풍을 쳐놓은 듯 깎인 병풍바위와 가래칠기 해변
전망대에서 보이는 연평도 앞바다. 갑도와 장재도, 석도가 흐릿하게 보인다.

 

 

연평도가 삶의 터전인 주민들

“육지에서 처음 오신 분들은 군부대 시설, 대피호 같은 곳들이 많다 보니 불안해 보일지 몰라도 주민들은 적응돼서 편하게 잘살고 있어요.” 앞서 전망대를 설명해주던 해설사는 연평 주민의 삶에 대해 입을 뗐다. 안 해설사는 퇴직 후 어머니가 계신 연평도로 돌아왔다. 그는 “연평도는 나에게 삶의 터전”이라며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발이 되지 않아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는 연평도의 가치를 자랑한 그는 섬을 알리는 좋은 기사를 부탁한다며 기자의 손을 잡았다.

전망대 아래에는 연평도 유일의 현대식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육지에서 볼 수 있는 카페와 같은 형태다. 연평 주민과 군인에게 한 마디를 남기는 포스트잇이 눈에 띄었다. 그곳에서 주민 B씨(58)를 만났다. 결혼한 언니를 따라 연평도에 온 그녀는 1년만 있다가 육지로 가려 했지만, 연평의 매력에 푹 빠져 25년째 거주하고 있다. B씨는 “(연평도는) 공기도 좋고, 마을 인심도 좋다”며 “사람 성향마다 다르겠지만, 북적거리는 것보다는 조용한 게 나아서 마음에 든다”는 말과 함께 연평도의 매력을 전했다.

연평도를 찾은 많은 사람이 그 매력을 알게 되면 좋겠지만, 안보 중심의 섬인 탓에 쉽지만은 않다. B씨 역시 “관광지나 해변으로 가는 길에도 군부대가 많아서 조금 무서운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며 “포 소리가 나면 훈련하나 보다 생각은 하는데, 포격 나고부터는 훈련이라도 깜짝깜짝 놀란다”고 했다. 그날 일에 대해 설명하는 그 모습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처와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76년 한평생을 여기서 살아온 이가 있다. 운동장에서 포탄 낙하지점을 설명해 주던 A씨. 76년 토박이인 그에게 연평도에 대해 묻자 “이러나저러나 내 평생 살아온 곳이고, 생계 수단이나 친구들이 다 있는데 어떻게 떠나냐”고 대답했다. “지금 서 있는 이곳도 현재는 간척이 된 곳이지만, 예전에는 친구들과 수영을 하며 놀던 곳”이라며 섬의 토박이로서 자부심을 보였다.

철조망 너머의 구리동 해변

 

잊지 말고 평화와 미래의 섬으로

누군가에겐 76년을 살아온 터전이자, 퇴직 후에도 찾아오는 고향, 또 누군가에겐 좋아서 눌러앉는 매력적인 곳이 연평도였다. 김영순 해설사는 “연평도는 대한민국에서 알려지지 않은 섬이었지만, 그 사건 이후에 드러나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 연평도는 서해 5도 중 가장 큰 섬인 백령도에 가려지는 섬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있어서는 안 될 사건 이후에 연평도가 많이 알려지게 된 것은 맞지만, 더 많은 사람이 찾아줘야 이곳을 지키고자 했던 장병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은 것”이라 덧붙였다.

또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그의 말대로 왕래가 없다면 기억 속에서 잊히고 묻히는 섬이 된다. 평화와 미래로의 도약을 준비하는 연평도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터전으로서도 여행지로서도 후회하지 않을 아름다운 섬이다. 분단과 아픔의 역사가 남아있지만 결국은 사람 사는 섬, 어느 곳보다 자연이 멋진 이곳을 방문해 좋은 추억의 장을 남기면 어떨까.

김종선 기자  jongseon05@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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