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문화를 즐기다_책] 공정하다고 착각하는 당신에게

“다 네 능력이야” 고등학교 시절, 실수로 시험 문제를 틀려 낮은 점수를 받았다는 학급 친구에게 필자가 건넨 말이다. 실수로 틀리든, 모르고 틀리든 능력주의 세상에서의 시험 점수는 곧 '학습 이해 능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매정한 말이었던 것 같다.

만약 그때의 필자가 마이클 샌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었다면 친구에게 다른 말을 건넸을 수도 있겠다. 샌델은 해당 저서에서 “능력주의는 공정한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그러고는 능력주의라는 신념의 기원, 실태, 역효과 등을 서술하며 그 병폐와 이면을 비판한다.

이 책은 능력주의가 작동하는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시스템은 오로지 능력에 따라서만 보상한다. 좋은 능력을 갖추면 높은 소득과 명예, 그리고 그에 걸맞은 사회적 지위를 부여받는다. 고학력자와 고소득층이 그런 경우다. 반면 저학력자와 저소득층은 반대의 상황에 부닥친다. 빠져나올 수 없는 빈곤의 늪과 낮은 사회적 지위에서 절망적으로 살아간다.

이는 분명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권리를 부여받는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 대해 반발하지 않는다. 능력만 쌓으면 보상받을 수 있는 방식이 명백히 공정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은 공정한가?”, “능력주의에 따라 자원을 분배하는 것은 옳은가?”, “능력은 무엇인가?” 등과 같은 근본적인 고찰이 부재한 ‘무한 신뢰’다. 누군가는 피해를 볼 수 있지만, 그 누구도 능력주의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빠져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자, 다시 필자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보자. 그 친구에게 건넸던 말은 정말 틀린 말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이 책에 따르면 옳은 말이라고도 할 수 없다. 애초에 시험이라는 제도 자체에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시험의 목적은 공부한 내용을 잘 이해했는지 평가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뽑아 높은 보상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막상 인재를 판별하는 기준인 시험 점수는 사소한 실수와 불운, 심지어 사교육 여부까지도 능력이라고 간주해 버린다. 결국 “시험을 잘봤다”라는 말은 “공부한 내용을 잘 이해했다”는 뜻이 아니라 “어떻게든 좋은 점수를 받았다”라는 의미가 된다. 우리는 그동안 시험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잃은 제도를 맹신하고 있었던 셈이다.

여전히 치열한 입시 경쟁, 점점 공고해지는 대기업 선호 현상, 갈수록 높아지는 빈곤층의 자살률. 한국 사회는 이미 능력주의에 병들어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고학력, 고소득, 고스펙을 새로운 귀족으로 만들어버린 능력주의에 대해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에 대해 근본적으로 접근하는 데에 길잡이가 돼줄 것이다.

이재원 기자  ljw3482@inha.edu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재원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