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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담론] 전언(傳言)
이지호 기자

 

무기한 예산정지. 정치학을 배우는 정치외교학과 비상대책위원회가 받은 징계다. 비대위장이 직무 수행을 하지 않은 데 더해, 책임 회피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수치스러울 뿐이다. 아니, 수치스러워야만 한다. 모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그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일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묵시했다. 회칙이 미비해 일반학우가 민주적 절차 없이 급대표를 임명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비대위장은 이를 인지조차 못 했다. 결과적으로 학과 내 자치기구는 사라졌고, 무기한 예산정지로 인한 피해는 학생들에 고스란히 떠넘겨졌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이것은 비단 정치외교학과만의 문제가 아니다. 근 3년의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학생사회가 죽어간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이미 위기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바뀐 것이라곤 전례 없는 비대위 위주의 학생사회를 당연시 여기는 분위기뿐이다. 학생사회가 과연 살아있다 할 수 있을까?

자치기구장들에 책임을 지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대표라는 자리가 부담스럽고, 처음이라 미숙하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맡은 직책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자치기구를 통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의 목소리는 그저 개인의 목소리로 남을 뿐이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결국 힘없는 학우들이 온전히 그 피해를 안게 된다.

그리고, 사퇴가 언제부터 책임진다는 의미를 가졌는지 필자는 모르겠다. 책임지기 위해 사퇴한다니, 이게 무슨 경우 없는 소리인가. 더 이상의 핑계는 없어야 한다. 부디 맡은 바 소임을 다해 학생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자치기구가 되길 바란다.

학생자치기구는 학생들의 대표기구다. 학생들을 대신해서 학교에 목소리를 내주는. 당연하게도 책임지는 것 역시 그들의 몫이다. 소속 집단의 모든 구성원을 대변하고, 공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모두를 이끌어야 한다. 무릇 한 집단의 리더라면 그래야만 한다.

자치기구의 대표 자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아닌 학생들을 대변하기 위한 수단이어야만 하는 이유다. 학생들의 안위보다 본인 커리어에 한 줄 추가하기 위해 그 자리를 탐한다면 지금 당장 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필자는 학생사회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두의 선의를 믿는다. 그들의 선의를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지만, 세상만사 그 무엇도 선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인간적으로 괜찮다, 인성이 좋다, 이번이 처음이라, 어쩔 수 없었다 따위의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세상에 어쩔 수 없는 것은 죽음과 세금밖에 없다.

모두 분발해야 한다. 총학생회가 비대위, 심지어 회장도 없이 단 한 명 남아있는 기구가 됐다. 이 상황에서 학생들이 누구에게 의지하겠는가.

교육부 사태가 터졌을 당시, 운 좋게 정식 총학생회가 있어 학생들의 목소리가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다. 운 좋게도 말이다. 만약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났을 때 책임을 지는 대표와 정식 학생자치기구가 없다면 그땐 정말 학생사회의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종말을 말이다. 그러니 부디 현실을 직시해 줬으면 한다.

이지호 기자  12192861@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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